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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門 ) 공모전 정보

[공모] 2021 문학동네신인상 공모 (~5/10)

모집분야

  • 소설 부문 : 중단편소설(200자 원고지 기준 80~200매) 2편
  • 시 부문 : 5편 이상
  • 평론 부문 : 1편 이상

응모자격 미등단 신인

 

첨부서류 신청서 다운로드 (신청서를 작성하여 응모작품과 함께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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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금

소설 1,000만원 / 시 500만원 / 평론 500만원

 

응모마감

2021년 5월 10일 (마감일 소인까지 접수합니다. / 응모 마감일이 변경되었습니다.)

 

발표

『문학동네』 2021년 가을호

 

보낼 곳

(우)10881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210 (주)문학동네 4층 국내1팀 문학동네신인상 담당자 앞

 

응모요령

  • 우편으로만 접수받습니다.
  • 원고는 가급적 A4용지에 출력해주십시오.
  • 겉봉에 문학동네신인상 응모작임을 명기해주십시오.
  • 응모작은 반환하지 않습니다.

[출처] www.munhak.com/competition/?aid=02

역대 수상자

  • 제1회 김현영 류소영 이현수(소설) 진수미 최갑수(시) 김수이(평론)
  • 제2회 김종렬 김은경(소설) 김종훈(시)
  • 제3회 김종광(소설) 이영수 김충규(시)
  • 제4회 김숨 이만교(소설) 김근(시)
  • 제5회 김숙(소설) 문석암 박은희(시)
  • 제6회 도태우(소설) 전남진(시)/li>
  • 제7회 이영주 정영(시) 김형중(평론)
  • 제8회 강설애(소설) 안현미(시)
  • 제9회 박영선 한성우(소설) 조동범(시)
  • 제10회 천명관(소설) 송승환(시)
  • 제11회 김유진(소설) 조영석(시) 김미정(평론)
  • 제12회 강성은(시)
  • 제13회 박주현 백영옥(소설) 조인호(시) 김나정(평론)
  • 제14회 전혜정(소설) 주원익(시) 이도연(평론)
  • 제15회 이영훈(소설) 조효원(평론)
  • 제16회 기준영(소설) 이선욱(시)
  • 제17회 오나영(소설) 김재훈(시)
  • 제18회 이상우(소설) 최예슬(시)
  • 제19회 한은형(소설) 남지은(시) 황현경(평론)
  • 제20회 전은지(소설) 황유원(시)
  • 제21회 이나리(소설) 구현우(시) 이재경(평론)
  • 제22회 김남숙(소설) 홍지호(시) 최진석(평론)
  • 제23회 박상영(소설) 김정진(시)
  • 제24회 고진권(소설) 장혜령(시)
  • 제25회 김지연(소설) 박세랑(시) 김건형 오은교(평론)
  • 제26회 전하영(소설) 한여진(시)
  • 제27회 김본(소설) 임유영(시) 박서양(평론)

시: 임유영, 「아침」 외 8편

소설: 김본, 「내일의 집」

평론: 박서양, 「여름을 향해 한 걸음, 더--박솔뫼론」

 


제27회 임유영,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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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 임유영

 

모자 하나가 멀리 호수 위에 둥둥 떠 있는 걸 보았다. 가벼운 짚으로 만든 모자 같았다. 크기는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팽이 크지 않아 보였다. 리본이나 꽃 장식도 없었다. 끈이 달렸는지 모르겠다. 크만큼 시력이 좋지는 않았다. 아케이드의 마네킹 위에 모자가 얹혀 있으면 나는 그것들을 약간 두려워하며 지나친다. 모자는 사람을 상상하게 만든다. 특히 누군가의 머리를. 머리 중에서도 이마를, 땀이 맺힌 이마. 주름이 잔뜩 진 이마. 검버섯이 가득한 이마. 이것은 뙤약볕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내 조모의 이마. 조모께서는 결코 모자를 쓰지 않으셨다. 그것이 얼마나 여성답지 못한 일인지에 대해 사람들은 수근거렸지만, 조모는 개의치 않으셨다. 옅은 이맛빛 잔털로 살짝 덮임 조그만 이마. 이건 내 조카의 것이다. 조카의 머리통은 덜 여문 배를 억지로 나무에서 따온 것처럼 생겼다. 그애는 늘 머리에 꼭 맞는 모자를 쓰고 외출한다. 우리 가족이 마지막으로 조모님을 모시고 이 호숫가에 온 것은 이십여 년 전이다. 조식을 마친 뒤 온 가족이 조모님을 부축해 가벼운 산책을 나섰다. 호숫가로 밀려온 물이 뭍에 닿을 때마다 흩어지고 다시 밀려갔다. 조모님이 중얼거리셨다. 바다......바다......바다...... 우리 중 누구도 그것이 파도가 아니라고 설명할 수 없었다.

 

 

 

 

아침

 

오년 전 나는 호수에 한 번 뛰어들었다. 아무 준비 없이 훌쩍 뛰어내렸다. 출렁다리는 출렁거렸고, 내가 뛰어내리거나. 말거나. 나도 모르게 한 손으로 코를 꼭 쥐고, 눈을 감고, 다른 한 손 끝과 양발 끝을 힘주어 모으던 짧은 순간에, 어, 이건 제대로가 아닌데, 생각했고, 눈을 뜨니 병원이었다. 는 문장은 다시는 실제로 떠올리고 싶지 않다. 입고 있던 흰색 반바지와 베이지색 티셔츠 대신 환자복을 입고 있었고, 휴양지의 병원 응급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지나치게 격정적인 바이올린 연주.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었고 머리가 이루 말로 할 수 없이 지끈거렸고. 다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을 끔벅. 감았다 뜰 때마다 보이는 흰 것들. 그것들은 긴 벌레처럼 움직였다. 호수에 사는 커다란 기생충이 내 눈알 속에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나를 발견했다는. 얼굴이 새카만 남자가 멀리서 나를 보고 손을 흔들며 크게 웃었다. 박수를 짝, 짝, 짝 치더니 주먹을 쥐고 허공을 흔들다가. 기지개를 켜며 뒤돌아 떠났다. 마치 아주 대단한 일을 완료한 사람처럼. 자신이 한 일에 흡족한 듯 보였다. 그가 떠나고 내 몸에 커다란 기저귀가 채워진 걸 알아차렸다. 더듬어보니 탐폰이 없었다. 나는 아직 그것을 제거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 저희도 시스템이라는 게 있다고, 무뚝뚝한 간호사는 반복할 뿐이었다.

 

 

 

 

아침

 

  새 아이보리 비누를 뜯어 세수했다. 가방에서 튼튼한 주머니 두 개가 달린 푸른 면직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양 소매 끝에 자개로 만든 단추가 세 개씩, 등뒤에 두 개가 달려 있는 옷이다. 단춧구멍이 너무 작아 끼울 때마다 고생스러웠다. 그러니 풀어지지도 않겠지. 누가 일부러 잡아 뜯지 않는 이상. 양말은 연회색 실크 양말을 가져왔다. 검은 구두는 어젯밤 미리 닦아두었다. 구두가 푹 젖을 생각에 조금 울적해졌었다. 비 오는 날엔 결코 신지 않았던 양가죽 구두.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비싼 구두. 졸업식에도, 처음 피어노 연주를 들으러간 공연장에도, 부유하지만 엄청나게 부자는 아닌 친구들을 만났던 시내의 식당에도 신고 갔던 것. 유치한 장식은 없지만 은근히 굽이 높은 구두. 굽의 바깥쪽마다 색이 열게 닳았다. 굽은 두 번 갈았다. 왼쪽보다는 오른쪽이 더 빨리 닳곤 했다. 구두방에 갈 적마다 멋쩍었다. 나는 오른쪽으로 더 기울었답니다. 혹은, 저는 왼쪽으로 더 기울었다면 어땠을까? 과연?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오른쪽으로 기울었던 중 만났던 사람들. 왼쪽으로 스쳐지나갔을 모르는 사람들. 사람들? 말하고 싶지 않다. 고백하고 싶지 않다. 최종 끝. 끝의 끝으로 간다. 가고 말 것이다.

  거울 속에 푸른 옷을 입은 여자가 서 있다. 긴 머리칼을 어깨 뒤로 넘기고. 나를 바라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게 만들고자 했던, 아무 의미를 담지 않고자 했던, 저 갈색 눈동자. 밤의 겉껍질을 둥글게 오려붙인 듯한. 비밀을 간직하고자 했던. 두 개의 논. 죽은 사람에게도 비밀이 있을까? 죽음은 비밀일까? 폭로일까? 죽음에 대해서는 아직 모른다. 시체, 시체에겐 비밀이 없다. 시체는 폭로일 거야.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폭로. 아무래도 머리는 하나로 묶는 것이 좋겠다. 발견될 때를 대비하면 그쪽이 낫다.

 

 

 

 

 

아침

 

오믈렛. 한데 섞인 흰자와 노른자의 중립적인 맛. 사각사각 씹히며 풋내를 살짝 풍기는 피망의 향기. 아주 잘게 썰린 햄의 질감과......버터. 강렬한 버터의 향기. 불에 충분히 달궈진 버터와 부드러운 달걀의 신비로운 조화. 신적인 것. 강렬한 것. 달걀과 불과 기름, 약간의 소금과 후추. 그러나 어떤 비법에는 아주 적은 양의 설탕이 포함되기도 하는데, 마치 독약의 이로운 활용법처럼. 설탕이 독이라는 데 동의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중에서 가장 순수한 설탕의 혐오자들은 의사가 아니라 알콜중독자들이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단맛을 싫어하다못해 거기에 반대하기까지 한다. 그들에게 달콤한 것은 오직 술이면 족하다는 듯이. 그러나 그들은 모르지. 아침의 오믈렛에, 짭짤한 비스킷에, 심지어 튀김옷 반죽에도 비밀스럽게 존재하는 설탕. 설탕을 잽싸게 뿌려 넣는 어떤 사람의 손. 아침을 만드는 사람의 손. 안주를 만드는 손. 여자. 여자의 손. 묶인. 찔린. 찢긴. 손. 희고 검고 누럼 세계의 손. 여자가 가진 손. 레이디스 핑거. 쿠기의 이름. 알코올 중독자 중에도 여자가 많은데 누군가 그들에겐 각별히 키친 드링커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내 위장을 들여다볼 검사관은 술을 아주 많이 마시는 여자였으면 좋겠다. 알코올 중독자라면 더할 나위 없다.

 

 

 

 

 

아침

 

간밤에 바에서 가벼운 프로세코를 한 병 주문했다. 산듯하고 청량했다. 천천히  두 잔을 마신 뒤에 아페롤과 칵테일 글라스를 청했다. 글라스에 아페롤을 약간 따르고 거기에 프로세코를 가득 채웠다. 달콤하고 향기로웠다. 초여름의 휴영지에 잘 어울리는 선택이다. 프로세코가 다 떨어져서 우아한 동작을 즐겁게 감상했다. 샴페인 잔을 들고 테라스에 나가니 호숫가의 야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재스민 향기와 잔디 깎은 냄새, 물비린내가 섞인 바람이 불어왔다. 검은 호수 위로 잔물결이 부서진 샹들리에처럼 반짝였다. 완벽한 밤이었다. 체라스 난간에 올라가 그대로 떨어지고픈 강렬한 충동이 일었다. 충동을 억누르느라 애쓰던 중 내가 취했음을 깨달았다. 옷깃을 여미고, 글라스를 테이블에 올려두고, 종업원들에게 인사를 건넨 뒤 방으로 돌아왔다. 방문을 열자 나의 갈색 트렁크와 푸른 원피스, 잘 닦아둔 검은 구두가 그대로 잘 놓여 있었다. 창밖에서는 아직도 호수의 물결이 반짝이고 있었기에 나는 책상 위의 펜을 집어 글을 쓸 뻔했다. "나는 매번 무거운 문을 밀면서 왔습니다......" 지금 내 앞에는 빈 종이가 한 장 있을 따름이다.

 

 

 

 

 

 

아침

 

  손목시계를 차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 시계는 내가 가진 가장 무거운 금속일 것이다. 얼핏 보면 번쩍이는 금팔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황동으로 만들어 저미도록 얇은 금박을 입힌 시계다. 나는 과시적인 장신구를 좋아하지 않지만 유행을 완전히 무시하지도 않는다. 크고 빛나는 것을 목, 귀, 손가락에 전부 휘감는 대신 팔목에 하나 정도 걸기. 이것이 내가 유행을 따르는 방식이다. 치장의 욕구는 내가 잘 조절해온 충동의 하나다. 갑싼 여자로 보이고 싶지 않다. 죽임당한 여자 대신 죽음을 선택한 여자로 보였으면 좋겠다. 이상한 일이지. 장신구를 사는 데엔 돈이 든다. 고귀한 여자는 돈을 쓰지 않는가? 성모님이라면 돈을 쓰는 일은 없겠지...... 하지만 성모상은 얼마나 화려한가! 성모님도 죽은 여자라고 볼 수 있을까? 죽어도 죽지 않는 여자라고 해야 하나. 나도 집에 성모상과 초로 꾸민 간이 제단을 갖추고 있지만, 이제 초를 밝히고 성모께 기도를 드리는 일은 영영 없을 것이다.

  깊은 강바닥에서 댐을 만드는 수부들은 납덩이로 만든 허리띠를 찬다고 한다. 시계를 찬들, 허리띠를 찬들, 내게 손목이나 허리가 남아 있으려나.

 

 

 

 

 

 

아침

 

  멀리서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린다. 빨강, 파랑, 노랑 색색의 공들이 높이 떠오르고 떨어지고, 아이들은 얕은 물에서 놀고 어른들은 호숫가에서 일광욕을 한다. 그토록 조용히던 밤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쏟아내다니. 그래 나는 해가 뜨지 않는 아침을 찾으려 이곳에 왔지. 숱한, 헛된 밤을 따라온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웃는 소리를 듣는다. 양산을 쓴 숙녀들의 속삭임도 호숫가를 따라 천천히 걷는다. 깨끗하고 예쁜 조약돌을 찾아 주머니에 넣는다.

 

 

 

 

 

 

아침

 

나에 관해서라면 아무것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곧 누군가는 알아차려 주리라. 얼마나 지나야 할까? 누군가. 누구일까? 여러 명일까? 단 한 사람일까? 남자일까? 여자일까? 남자일 것 같다. 그이는 뜨내기 순정일까. 별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젊은 남자일까. 물론 산전수전 다 겪었을 수도 있지. 상관없다. 아니, 상관있다. 나는 죽은 자의 얼굴을 하고 있겠지. 죽은 장의 얼굴이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죽은 자의 얼굴이겠지. 틀림없이. 그는 눈썹을 높이 들어올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침을 꿀꺽 삼킬까. 경험이 많은 중년의 경감일지도 몰라. 수영을 잘하는 어린 아이라면 어쩌지? 엄마 심부름을 끝내고 한달음에 호숫가로 달려와 옷을 벗어던지고 날씬한 전갱이처럼 헤엄치던 아이라면 어저지. 그 애가 여자애라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달려! 전속력으로 뛰어가렴. 가가운 건물 쪽으로. 옷은 되도록 주워 입고. 네가 발견한 끔찍한 광경을 가장 먼저 만나는 어른에게 알리렴. 너는 울거나, 소리 지르거나, 주저앉을 지도 모른다. 괜찮아. 털어놓은 다음엔 되도록 빨리 잊어. 전부 잊어버려. 친구들에게 너의 무용담을 자랑하며 떠벌려도 좋다. 그럼 더 빨리 희미해지겠지. 이보다 더 무섭게 만들 수는 없을 거야. 걱정 마. 금찍한 일은 어른들에게 맡기고, 모두 잊어버려.

 

 

 

 

 

 

차회 예고

 

다음 편에서도 주인공은 죽지 않고

이야기는 계속된다는 예고,

대신 조연 중 누군가 희생될지도 모른다.

다음 편에서 나는 손수건을 꼭 쥐고 울 준비를 하고.

울고 난 뒤의 지루함을 버틸 채비를

과자를 준비한다. 우유를 따른다.

다음 편의 그다음 편에도

예고가 있나? 이야기는 계속

되나? 여보세요.

가다듬은 목소리로 자,

 

왼손 역지 끝마디에

새카만 점이 한 개 생겼습니다.

구두점만합니다.

 

제26회 한여진(시) - 검은 절 하얀 꿈 외 4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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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절 하얀 꿈

 

그 절에서는 

도자기 그릇을 팔았다

 

나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는데

그곳에 가면 살 수 있을 거라고들 했다

 

비 내리고 천둥 치던 날

절에 갔다

 

먼 길을 걸어온

손과 발에선

흙냄새가 난다

 

내가 찾고 있는 그것은 조용하고 둥글다 그것은 초록색과 파란색을 적당히 섞어놓은 듯한 색을 띤다 그것은 불타오르며 깨진다 그것은 눈을 감는다 침묵한다 그것은 알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시 둥그런 형태를 취한다 하지만 자주 형태를 바꾸고 색깔을 나무를 더 기울게 만드는 무엇이 되기도 한다

 

무엇이었다가 곧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이런 문장을 쓰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지만

눈을 떠보니 텅 빈 방이었고

 

죽지 않고 도착해서 기뻤다

손과 발을 움직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곧 내가 찾는 것을

찾게 되리라는 예감이 들고

 

밖에서는 여럿의 사람들이

나직이 이야기하는 소리

 

그들은 즐겁다

처음 들어보는 이국의 언어들

 

이곳은 내가 태어난 곳이 아니구나

 

겨울이 도착하고 있다

얼었다 녹고

다시 얼어버리는 눈

미끄러지는 사람들

 

나는 순간 황홀해진다

눈발 속에

홀로 절이 서 있다

 

하양 문과 검은 지붕

검은 지붕 위 쌓여가는

햐얀 눈

정직한 세상

고요하고 무궁하게

 

 

내가 찾는 것 무엇이었다가 곧 아무것이 되는 그것은 불빛 그것은 굴러가는 토마토 그것은 이국의 사람들이 마시는 뜨거운 홍차 그것은 향기 그것은 허기 그것은 치통 그것은 늙은 개의 얼굴 그것은 울리지 않는 전화벨 그것에 손을 가져가면 순간 사정없이 깨어져

 

무수히 많은 파편들은 

흐르고 넘어지고 흐르고 슬프고 흐른 채 나에게 도달한다

눈을 질끈 감는다

 

다시 빈방에 남겨져 있다

 

인기척이 들리고

흙냄새가 가득한

 

 

 

 

 

순무는 순무로서만

 

너른 들판을 지나고 있었다. 87년식 오토 밴의 갖은 소음과 진동 속에서 우리는 순무에 대해 말했다. 난 순무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 그는 순무를 좋아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만큼 순무에 대해 잘 알진 못했다. 나는 그에게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 그는 순무를 너무도 좋아한 나머지 사랑할 수도 있을 정도라고 말했는데 나는 좋아하는 일과 사랑하는 일은 아주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순무와 함께 온천을 가거나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을 들으며 우유 거품이 올라간 차를 마시고 싶다고 했다. 나는 순무의 적정 입수 온도는 63도이며 그 이상은 질겨진다는 것을 하나의 방정식으로 증명하는데 성공했고 그것으로 박사학위를 받을 예정이라고 말한다. 그는 순무라면 뭐든 좋다고 한다. 질기든 맵든 삭아 있든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순무를 찾기 위해 차를 멈추고 순무밭으로 들어갔다. 그때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이 앞다투어 등장하더니 엄청난 속도로 순무들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휩쓸려 우리도 순무의 파란 머리를 쑥쑥 뽀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순무들을 손질하고 있었다.

 

이 순무들은 앞으로 어떻게 되나요.

 

자네들은 정말 아는 게 아무것도 없구만.

 

함께 쪼그려 앉은 아주머니들은 모두 혀를 찼다. 하지만 순무들은 우리의 손에 놓인 채 가만히 침묵만 할 뿐이었다. 그는 이것이 순무들이 기분이 좋다는 신호라고 속삭였지만 나는 순무의 속은 당최 모르는 거라며 침울한 표정으로 깍둑썰기를 하였다. 아주머니들은 작게 조각난 순무에게 고춧가루를 뿌리고 버무리더니 우리의 입 속에 넣어주었다. 아주머니들이 물었다. 아직도 모르겠냐고.

 

우리는 잇따라 입을 벌리며 더 달라 칭얼 댈 뿐이었다.

 

* 사뮈엘 베케트, <충분히>, <죽은-머리들/소멸자/다시 끝내기 위하여 그리고 다른 실패자들>

 

 

 

 

 

 

박태기나무아래서 벌어진 일

 

은영이와 찬영이로

다시는 함께 불리지 않는다

 

우리는 늘 영이었는데

생각은 서로 무한하다

 

그래서 무슨 생각 해, 하면

이인삼각으로 달리던 우리의 그림자

 

꼬여버린 다리 세개와

늘 앞서 있던 너의 어깨를

 

그리고 청기 백기 내려간

텅 빈 운동장에서 나는

단지 미안하다 했을 뿐인데

 

파벽돌처럼 딱딱하던 네 얼굴

참 예뻐서 갖고 싶었던 너의 치맛자락

끈 풀린 운동화 너의 지랄맞은 친구들까지

 

전부 다 폭발하던 그때 그 가을 하늘

나는 바닥에 엎드려 눈을 질끈 감았다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그때 그 달빛 아래

아이들이 떠나도 붉은 멍투성이의 나무 하나

잠시 숨죽이더니 계속 자라는 거 있

 

주렁주렁 홍채 같은 열매들이

사방에서 흔들리고

 

하지만 언제고 영아

네가 말라비틀어진 내 아래를 지나간다면

 

그땐 겨울 지나 봄일 것만 같고

나도 초록을 피울 수 있을 것만 같고

 

찬영이와 은영이로

운동장은 가득할 것만 같고

그래도 나는 영이고

영아, 나는 너 다 이해해

 

그러니 영아, 계속 달려

나 여기서 기다릴께 혼자 꽃피울게

 

옛날 일은 다 잊었는데

누군가 소원을 물어봐

 

영아, 기억나지 않는 소원이란

얼마나 오래된 걸까

 

 

 

 

 

 

마당엔 어른들이 모여 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솥을 들여다본다 솥은 우리 가문의 자랑 큰할머니와 할머니와 어머니는 솥에서 태어났다 이 모든 솥뚜껑에 맞아 죽었다 언니는 솥 아래서 불타 연기가 되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솥에 누군가를 넣고 누군가를 꺼내며 누군가는 솥을 걱정한다 솥에 들어갈 사람이 점점 부족해 누군가 내게 너는 주워온 게 분명하다고 한다

 

검은 솥을 들여다보면 아무리 채워도 넘치지 않는 검은 물이 있다 그 속엔 무엇이 있길래 솥은 한없이 검은가 나는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쓰지 않는다 솥이 없는 하루에 대해 쓴다 솥에서 유래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쓴다 마당을 둘러싼 담장 밖에 대해 쓴다 큰할머니와 할머니와 엄마와 이모와 언니가 아닌 것들에 대해 쓴다

 

계속 쓴다고 되니

 

죽은 줄 알았던 언니가 늙은 배롱나무를 들여다본다 나무 아래서 고양이가 죽은 제 새끼를 핥고 있다 언니는 죽기 너무 아까운 미소를 짓고 있다 살아 있는 고양이는 이미 죽은 얼굴을 하고 있다 누군가가 이제 그만 솥을 치우자고 한다 그는 이제 곧 붙잡혀 솥에 들어갈 것이다 이런 것들에 대

 

쓰지 못한다 나는 솥에서 태어나 솥을 맴돌며 솥으로 돌아갈 사람이고 솥밖에 모르는 사람이고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사람이고 결국 백지에 불을 붙여 솥에 던져 넣게 될 사람이다 연기로 가득해 경보소리가 울리고 어른들이 도망가면 그 뒷모습을 지켜보게 될 사람이다 나는 솥의 자랑일 것이다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

 

읽던 소설 속에서

인물들이 서로를 미워하고 있다

 

그것이 이 책의 유일한 결말은 아니니까

 

가장 많은 미움을 쌌던 인물처럼

나는 징검다리를 건넜다

 

개울에 빠져 죽었다는 그와는 달리;

반대편에 잘 도착했는데

 

돌아보니 사방이 꽁꽁 얼어 있었고

그애는 죽었겠구나

 

죽은 이를 미워하던 사람들이

모여 흐르는 땀을 연신 닦다가

 

미워하던 마음이 사라진

텅 빈 구멍을 들여다본다

 

그것은 검고 아득해서

바닥이 보이고

 

돌맹이를 던져볼가

 

아서라, 죽은 이는 다시 부르는 게 아니야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는 찰나에도

두부는 아주 평화롭게 구워진다

 

이것은 소설일까 아닐까

 

고개를 들면 온통 하연 창밖과

하얗게 뒤덮인 사람들이 오고가는 풍경

 

모든 것이 끝나도 

어떤 마음은 계속 깊어진다

 

제25회 박세랑(시)

더보기

뚱한 펭귄처럼 걸어가다 장대비 맞았어 

 

난 웃는 입이 없으니까 조용히 흘러내리지

사람들이 웅덩이를 밟고 지나가

더 아프려고 밥도 꼬박고박 먹고 알약도 먹어

물처럼 얼었다 녹았다 반복되는 하루

친구라도 만들어야 할까? 우동 먹다 고민을 하네

무서운 별명이라도 빨리 생겼으면 좋겠다

 

약 먹고 졸린 의자처럼 찌그덕삐그덕 걷고 있는데

사람들은 화가 나면 의자부터 집어던지네

난 뾰족하게 웃는 모서리가 돼야지

살아본 적 없는 내 미래를 누가 부러뜨렸니!

약국 가서 망가진 얼굴이나 치장해야지

뒤뚱뒤뚱 못 걸어야지

 

난 은밀한 데가 조금씩 커지고 있어

몸은 축축해 곰팡이가 넘치는 벽이 되려고 해

사람들이 깨트리기도 전에

계란프라이처럼 하루가 누렇게 흘러내리고

탱탱하게 익어가는 구름들아 안녕

누가 좀 만져주면 좋겠지만

 

뚱하게 걷다보면 장대비가 내리고

집에 뛰어들어가도 계속 비를 맞는다

 

터진 수도관을 고칠 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 난 자구 흘러넘치는데 바닥을 닦아낼 손이 안 보이는데

 

갈 데가 없어 혼자 미끄럼틀을 타면

곁을 지나가던 어깨들이 뭉툭 잘려나가지

떨어진 난, 공처럼 어디로 튈 지 모르겠지만

 

 

 

 

 

 

뾰족한 지붕들이 눈을 찌르고 귀마개를 뺏더니 아무도 나한테 말을 안 걸고

 

세면대 속 출렁이는 비명을 싯어내자

앞니가 두 개나 달아난 내가 뚱하니 서 있네

누구한테 자꾸 털리고 다니니?

내가 나를 털었는데 어젯밤에 발작이 있었거든요

더러워진 손바닥과 구린내 나는 발가락을

우리집 마녀에게 내민다

젖꼭지 캄캄한 엄마가 냄새를 맡고 뛰쳐나와

불심검문처럼 내 몸을 구석구석 더듬다

내일쯤 잡아먹으면 끝내주겠지?

먼지 쌓인 악몽이 내 피를 한 차례 휩쓸다 간다

생각이 엉킬 때마다 머리카락은 무서운 속도로 자라고

검은 수초가 되어 발목을 넘어뜨리고

고무줄처럼 질긴 얼굴을 누가 잡아당기면

늘어나고 찝지기는 나의 일상들

불안을 쪼그맣게 오려서 알록달록 꾸민다

미모를 갱신한 내가 약국으로 놀러간다

내 인생 하류를 통과하는

소화제를 한 움큼씩 집어삼키면

우와 시원하다! 몸에 찍힌 발자국들이 욱신거리고

눈 코 입 깨진 자리마다 후후 불면서

하트 모양 스티커를 붙이면 자신감이 생긴다

예쁜 건 내 잘못이에요!

열등한 건 더 열등한 것들을 만나 해결하라고

화장실 물을 시원하게 내려주면

가난하고 뻔뻔한 걸 낳아놓고

미역국을 사발로 퍼먹은 게 누구더라?

마녀에게 빠진 이를 드러내며 비웃어야지

굴러다니는 깡통처럼 신나게 밑바닥을 보여줘야지

 

 

 

 

 

 

뒤에서 오는 여름

 

여러 방향으로 꺾이는 의자에서

책을 읽는다

 

흔들리는 풍경이 다가오는데

 

여름 안에서 나 혼자 걷고 있었다 여름이 무성하게 이파리를 뿜어내고 그늘을 만든다 삐뚤빼뚤 자라난 내가 징그럽게 언덕을 뒤덮고

 

생각을 길게 이어서 하면

펼쳐놓은 들판이 넘어간다 웃음과 비명으로 찝겨 있었다 이파리는 떨면서 바닥에 엎드려 있고, 문장들이 따라붙는 건 모르는 사람의 불행들이지 남의 고통은 문장에게 최고로 인기가 많고

 

글시들은 다정한데

감당할 수 없어서 조금 미쳐 있었고

 

살기 이해 나는

 

줄곧 상처 입고 있었다 문장을 오래 들여다보면 징그러웠다 겹겹의 헨즈들로 징그러운 내부를 읽어 낼 수 있었다 무서울 게 없었다 두려움을 지나칠 수 있는 슬픔이 더 켜져버려서

 

뭉개진 새를 곳곳에 심어 두었다

 

더는 혼자서 버티지 않아도 돼, 라는 말을 들었다 그동안 얼마나 오래 버려졌던 거니 서늘하게 등 뒤가 젖어 있던 날

 

지나오던 길목에서 죽은 새 한 마리를 본다

 

익숙한 문장은 겪어본 일들이었다

 

 

 

 

 

 

프랑켐슈타인의 인기는 날마다 치솟고 너희는 약 맛을 좀 아니

 

나사들이 미릿속을 맴돌고 있어

불안이 피부 위로 돋아났어

 

그림자를 주워 입고 노을을 구경하는데

나는 왜 멀쩡한 걸까?

 

무서운 말도 장난처럼 찍찍 내뱉을 줄 아는데 의사는 맨날 망가질 거래 조롱하는 입술처럼 젖꼭지가 점점 더 삐뚤어질 거며 나에 관한 어떤 얘기도 꺼내지 않는다면 뒤집힌 물고기처럼

밤낮으로 불안에 시달릴 거래

 

혀를 숙 내밀고 가로수에 매달려 지나가는 사람이나 깜짝 놀래키고 싶은데! 날개를 쫙 펼치고 찢어진 흉터처럼 날아다녀야지 시퍼런 가위처럼 살아있는 것들은 전부 오려내야지 목말라서 헐떡이는 사람을 목매고 싶게 만들어야지 켜놓은 가스불처럼 온 집안을 잿더미로 뒤덮어야지 앞만 보고 똑바로 걸어가도 삐뚤어지고

 

버텨야 할 중력이 내 인생을 흙탕물에 풍덩! 빠뜨리는데

 

더 추워지기 전에 나를 봉인하러 가야지 누가 베어간 콧대를 이어서 붙여야지 입은 왜 달린 건데? 거대한 감옥에 뚫려 있는 쪼글쪼글한 구멍이 무슨 소용인 건데? 갇혀 있던 소문만 새어나와 사방을 더럽히는데 수술대에 오르면 의사들은 링거 색이랑 오줌 색이랑 똑같다고 킬킬거리고 깨어나면 사람처럼 우스운 것들은 절대로 안 믿어야지! 겨울밤이 어두워져 사람이 사람을 닮아가는 줄도 모르고

 

번호표가 길어지는 병원 앞에서

 

회복해서 또 사는 게 무섭지도 않니? 알약은 어디서 녹고 있을까 눈을 떴는데도 난 아직 깨어날 줄 모르고 시체 냄새 나는 향수나 칙칙 뿌리고 놀러 가야지 아무나하고 사랑할 땐 흥청망청 뒤로 해야지 표정이 안 보이는 자세가 훨씬 아프고 재미있으니까 나보다 더 망가진 애들만 보면 심심하게 뒤가 간지러워

 

너덜너덜한 웃음이나 뒤집어쓰고

다 같이 모여서 수다나 떨래?

 

 

 

 

 

 

물 속에서

 

나는 쭉쭉 뻗어나갈 거야 해파리처럼 서너 토막 난 식물처럼 

목소리가 길게 자라고 있어

 

혀가 잘려나간 불장난을 앨범 속으서 끄집어낸다 종교를 버리고 밑바닥으로 도망치는 건 어때?

 

때수건으로 머릿속을 밀다 찜질방 문을 열면

문어처럼 불어터진 여자가 다리 건너 한 명씩 사내들을 끌어 안고 허벅지 살을 씹어댈지도 모르지

그 여자 발바닥에 침이라도 뱉으며

여편네야 밥은 언제 줄 거야? 냉장고 밑구멍 속으서 집어 삼키는 뻣뻣한 치모

계집애야 그건 네 아빠나 좋아했던 청춘이지 미역줄기가 아니란다 목이라도 매달고 싶은 거니?

 

나는 가위질을 잘하고

사람을 하고 싶지만

 

매일 밤 직장에서 튀어나와 젖꼭지를 빨아대는 뱀을

엄마에게 빼앗기고 말았지

 

(흉터투성이 우연이 깡패 같은 우연이 내 거웃에게 떼인 돈이나 받으러 온다면 덜 지루하려나?)

 

벌겋게 달아오른 강철 팬티를 벗어던지고 목욕탕 문을 나서는데 브래지어도 깜박하고 안 했는데

소용돌이 물살처럼

하필 네 자지가 털털거리는 오토바이가

불가마 장수탕 앞에서 뒤집어지는 신기루란

 

오 분 뒤로 뒷걸음치는 입술

오 분 전에 발생한 사고들은 나를 물귀신으로 만들고

 

 어제도 그제도 한 달 전의 일도 오 분 앞에서 꼴까닥 자궁을 찝지고 말았잖아?(내 인생 흔적도 없이 달아나버린 보통명사들이 어때? 용수철을 심장에 박고 완급조절에 실패한 쾌감이지? 죽음보다 싱싱한 치욕이지? 몸밖으로 튕겨나간 너를 붙잡을 곳이 아무데도 없지? 억울해진 혀로 똥구멍을 긋고 달아나고 싶은데)

 

목소리는 가랑이를 벌린 채

우리에게 일용할 음부를 오르락내리락

 

(이제 그만 물속에서 슬그머니 놓친 척 해줘)

 

양칫물 위에서 발버둥치는

옛 애인의 자지는 잘라먹었어야 했지

 

[출처] blog.daum.net/k1996/category/%EB%AC%B8%EC%98%88%EC%A7%80%20%EC%8B%A0%EC%9D%B8%EC%83%81/%EB%AC%B8%ED%95%99%EB%8F%99%EB%84%A4%EC%8B%A0%EC%9D%B8%EC%8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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