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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門 ) 공모전 정보

2021 '영남일보 문학상' 작품 공모...마감 12월10일(목) 오후 5시

제4회 영남일보 구상문학상 

▶단편소설 (200자 원고지 기준 70매 안팎) : 당선작 1편, 상패와 상금(700만원)
▶시 (3편 이상) : 당선작 1편, 상패와 상금(700만원)

광복의 기쁨과 6·25전쟁의 비극 속에서도 문학과 문학인은 글로써 세상을 기록하고 함께했습니다. 광복의 해에 창간한 영남일보는 75년간 문학과 문학인들의 벗이 돼 왔습니다.

영남일보가 문학의 의미와 가치를 드높일 2021년도 '영남일보 문학상' 작품을 공모합니다. 역량 있는 신인 발굴을 통해 한국 문학 활성화에 기여해 온 '영남일보 문학상'은 시와 단편소설 2개 부문에서 당선작을 선정합니다. 참신하고 패기 넘치는 많은 작가들의 도전을 응원합니다.

응모요령:

△마감= 12월10일(목) 오후 5시

△보낼 곳= 대구시 동구 동대구로 441 영남일보 문화부 '영남일보 문학상' 담당자 앞(우편번호 41260)

△발표= 2021년 1월1일자 신년호

유의사항:

△응모작은 미발표 순수 창작물에 한합니다. 동일한 작품을 타사 신춘문예에 중복투고하거나 작품의 표절이 밝혀질 경우, 당선작 발표 이후라도 당선을 취소합니다

△응모원고 겉봉투에는 '영남일보 문학상 응모 작품'과 '응모 부문'을 굵은 글씨로 적어주십시오

△원고 첫 페이지에 응모자의 이름(본명)·주소·전화번호(휴대전화 포함)·나이를 적고 필명일 경우 본명을 반드시 밝혀주십시오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한 단편소설의 경우, 200자 원고지로 환산한 원고량을 첫 장 위쪽에 적어주십시오

△응모원고는 반환하지 않습니다

△마감 당일 소인이 있으면 기간 이후에도 접수합니다

문의: (053)757-5276|

 

역대 수상작 

www.kusang.org/post/%EA%B5%AC%EC%83%81%EB%AC%B8%ED%95%99%EC%83%81-%EC%97%AD%EB%8C%80-%EC%88%98%EC%83%81%EC%9E%90

 

<구상문학상> 역대 수상자(1~11회)

<구상문학상> - 영등포구·(사)구상선생기념사업회 2009년 제1회 <구상문학상> 본상 김형영 시인 『나무 안에서』 / 신인상 정진혁 시인 『간잽이』 2010년 제2회 <구상문학상> 본상 유안진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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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제3회 영남일보 문학상 수상작

제3회 영남일보 구상문학상 본상 수상작으로 하재연 시인의 '우주적인 안녕'이 선정됐다. '2020 영남일보 문학상' 단편소설 부문에는 김재현씨의 '마지막 조련사'가, 시 부문에는 금희숙씨의 '포노 사피엔스'가 선정됐다.  

제3회 영남일보 구상문학상은 예심위를 거친 시집 10편이 본상 후보에 올랐다. 2020 영남일보 문학상에는 시 2천268편과 단편소설 225편 등 2천493편이 접수됐다.

 

영남일보 구상문학상 예심은 김이듬·정한아 시인, 고봉준 문학평론가가, 본심은 최정례 시인, 이경수·조재룡 문학평론가가 맡았다. 2020 영남일보 문학상 예심은 류인서·이향 시인(시 부문), 김진규·백가흠 소설가(소설 부문)가, 본심은 나희덕 시인·홍정선 문학평론가(시 부문), 권지예·김별아 소설가(소설 부문)가 각각 맡았다.

www.kusang.org/post/%ED%95%98%EC%9E%AC%EC%97%B0-%EC%8B%9C%EC%9D%B8-%EC%9A%B0%EC%A3%BC%EC%A0%81%EC%9D%B8-%EC%95%88%EB%85%95-%EC%A0%9C3%ED%9A%8C-%EC%98%81%EB%82%A8%EC%9D%BC%EB%B3%B4-%EA%B5%AC%EC%83%81%EB%AC%B8%ED%95%99%EC%83%81-%EC%88%98%EC%83%81

 

하재연 시인 '우주적인 안녕' 제3회 영남일보 구상문학상 수상

제3회 영남일보 구상문학상 본상 수상작으로 하재연 시인의 '우주적인 안녕'이 선정됐다. '2020 영남일보 문학상' 단편소설 부문에는 김재현씨의 '마지막 조련사'가, 시 부문에는 금희숙씨의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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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당선작) 마지막 조련사 (상,하) - 이명미

하이너씨가 아득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이십대 중반의 젊은 사육사였을 때이다. 독일에 있을 때 그는 사진과 동영상을 통해서 그것을 보았다. 실물을 만나게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득은 그에게는 생소한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만 살고 있었다. 하이너씨는 자신이 아득을 만나게 될 거라고, 그리고 아득의 전속 사육사가 될 거라고, 그 때문에 고국을 떠나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타국에 머물러 어느새 노년에 가까워질 거라는 사실을 몰랐다.

아득은 국가가 특별히 관리하는 보호종이었다. 타국으로의 반출은 절대로 불가했다. 아득을 실제로 본 사람들 역시 극소수에 불과했다. 세계 각국의 동물학자들이 연구를 위해 동양의 작은 나라를 방문했지만, 그들도 유리 벽 너머에서 바라보는 게 고작이었다.

아득은 바위였다. 한번 자리를 잡으면 도통 움직일 줄을 몰랐다. 의사를 표현하려는 노력도 거의 하지 않았다. 비행기를 열 시간 넘게 타고 동양의 작은 나라의 작은 동물원까지 방문한 이들은 몸이 달았다. 참다못한 어떤 젊은 학자는 아득의 울음소리를 듣기 위해 주먹을 쥐어 유리 벽을 세 차례나 꽝꽝 두드려댔다. 그 바람에 경비가 달려와 학자의 팔을 힘껏 비틀어 그를 바닥에 처박았다. 과잉대응으로 인한 외교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었다. 그것이 보통의 방문이었다면. 아득은 국가 보호종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 학자들의 관심이 쏠려 있는 희귀종이었다. 아득을 만나는 것이 허락되는 사람들 역시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들은 동의서에 서명하고, 철저한 몸수색을 거치고, 소독약 때문에 구역질이 올라올 정도로 철저한 위생처리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아득을 유리 벽 너머에서 간신히 관찰할 수 있었다. 아무도 경비대의 행동을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귀한 시간을 방해받은 학자들은 젊은 학자의 혈기왕성함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아득이 놀라서 이상이라도 발생할 경우, 방문은 즉시 중단되고 두 번 다시 아득을 볼 수 없게 될까 걱정이 됐다. 젊은 학자는 영어로 스탑과 쏘리를 연신 외치며 경비의 제압을 벗어나려 몸부림쳤다. 다른 이들은 그의 발버둥이 거슬렸다. 어서 빨리 여기서 치워버렸으면.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방해꾼. 그들에게는 너무 아까운 시간이었다.

젊은 학자는 결국 경비대에 의해 밖으로 끌려나갔다. 담당자인 닥터 한은 별일 아니었다는 듯이 웃었다. 그녀는 학자들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춰 달라고 요구했다. 모쪼록 저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를. 짧은 말에는 어딘가 음산하고 위협적인 데가 있었다.

'당신들은 저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학자들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유리 벽 너머의 소란과 혼돈 속에서도 아득은 그저 바위 같았다. 그것이 살아있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학자들은 고요히, 유리 벽 너머의 보고 있으나 보이지 않는 미지의 생물에게 일종의 학자로서의 경의를 표하며 눈을 떼지 못했다.

하이너씨는 아득의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득이라는 도무지 파악할 수 없는 생명체를 곁에서 보살피다 보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에게도 손에 꼽을 만한 일이었다. 하이너씨가 이전에 돌보았던 동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보채는 법을 알았다. 낑낑대는 녀석도 있었고, 조용히 다가와 마치 사람처럼 등이나 어깨를 두드리는 녀석도 있었다. 밥을 달라거나 안아 달라거나 우리에서 내보내 달라거나 놀아 달라거나. 하이너씨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어떻게든 전달하기 위해 애를 썼다. 애처롭고 가여운 것들. 하이너씨는 그들이 자신을 찾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물들은 대부분 강제로 고향을 떠났다. 푸르고 차가운 초원의 공기와 사막의 열기와 까마득한 어둠에 휩싸인 깊은 숲, 더러는 높고 커다란 바위 절벽에서 가위로 잘라내듯 분리되어 우리에 갇혔다. 그들이 어미와 무리를 뒤로하고 고향을 등지며 이곳에 모여든 덕분에 하이너씨가 밥을 먹고, 옷을 사고 가끔은 영화를 보며 맥주를 마시다 소파에서 잠들 수 있었다. 하이너씨에게 그들은 살아있는 죄책감이었다. 동물들의 먹이를 통에 담고 분변을 치워줄 때, 짚이나 나뭇가지를 새로 넣어줄 때, 그들이 하이너씨에게 고마움과 절대적인 경외심과 애정을 표하는 미묘한 표정을 지을 때면 그의 죄책감은 더욱 선명해졌다. 그들이 마치 하이너씨를 부모나 보호자로 여기며 그를 따르고 다정한 모습을 보이면, 순간 그는 사육장 문을 모두 열어서 나에게 애정을 갈구하지 말고 너희의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소리치고 싶어졌다.

'여기가 아니야.'

하이너씨는 매일 마음속으로 외쳤다.

아득을 돌보게 되었을 때, 하이너씨는 광활한 숲을 지키는 숲지기가 된 기분이었다. 혹은 산 중턱 오두막에서 산짐승의 울부짖음과 야생 조류의 소리에 잠드는 산장지기와 같은 기분도 들었다. 아득이 풀밭 위에 가만히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는 그리운 기분에 휩싸였다. 그가 어린 시절 딱 한 번 아버지와 함께 갔던 니더작센주의 국립공원. 나무들이 빈틈없이 빽빽하게 들어선 바람에, 방문객이 맞이할 태양마저 가리는 어두운 가문비나무숲이 떠올랐다. 그가 만난 아득은 그것의 어미와는 다르게 야생이 아니라 인공 포육실에서 태어났다. 세상에 나와 동물원 밖으로 나가본 적도 없을 녀석이 먼 이국땅―하이너씨에게는 고향이지만―숲에 꽤 오랜 세월 동안, 마치 그곳에 뿌리를 내려 이끼가 가득한 바위와 같이 잠들어 있는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그때는 아직 현역이었던 닥터 강에게 아득에 대한 주의사항을 들으며 유리 벽 너머의 모습을 바라보았을 때, 녀석이 문득 고개를 돌려 그와 눈을 마주쳤을 때, 하이너씨의 시간은 녀석과 함께 흘러가기 시작했다.

닥터 강은 아득이 지나치게 예민한 동물이라고 말했다. 기척을 감추는 일에 능숙하고, 마치 돌덩이처럼 주변 풍경의 한 조각인 양 굴어서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면서 웃었다.

"보채는 일이 없으니 해주어야 할 일도 없을 것 같지만, 녀석은 그리 만만하지 않소."

닥터 강은 곰 같은 마누라와 사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라고 덧붙였다. 그때는 아직 타국의 속담이나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라 닥터 강이 소크라테스의 부인 못지않은 악처와 사는 줄로만 알았다. 이전에 돌보던 그리즐리 베어를 떠올리며 아득의 어떤 부분에 그러한 흉포함이 숨어있는 것일까 긴장도 됐다. 사육사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전에 녀석에게 물려 죽거나 맞아 죽게 된다면 분명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될 거라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묵직해졌다.

하이너씨는 매일 새벽 동물원에 속해 있는 연구센터에 들렀다. 아득의 먹이 때문이었다. 보호종인 아득은 개체 수가 적었기 때문에 철저한 계획과 관리 아래에서 사육됐다. 아득을 보호하는 도시의 동물원들은 모두 국가 주도의 연구센터가 있었고 연구원들이 상주했다. 정부는 전염병이 돌았을 때와 근친교배를 최대한 자제해 유전자 풀을 늘리기 위해 녀석들을 도시 곳곳에 나누어서 보호하고 있었다. 하이너씨가 돌보는 아득도 일찌감치 어미와 분리되어 저마다 다른 다섯 개의 도시에서 모인 녀석들이었다. 연구원들은 언제나 개체 수를 늘리기 위해 고심했지만, 쉽사리 늘어나지 않았다.

아득을 돌보는 사육사 역시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됐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닥터 강의 말에 의하면 인간 역시 유전자에 따라 취약한 질병이 있으므로, 혹시나 아득에게 전염이 될 경우의 위험요소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일리 있는 주장 같으면서도, 한편으로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닥터 강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자신이 아득의 담당 사육사가 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연구센터에서 받은 먹이를 차에 싣고 아득의 우리로 향하는 길이 하이너씨에게는 언제나 가장 지루하고 먼 여정이었다. 매일 똑같은 곳을 언제나 똑같은 속도로 달려 아득을 만나러 가는 길. 반쯤 눈을 감고도 반사적으로 찾아갈 법한 세월이 지났다. 그에게는 여전히 지도 없이 미로를 맴도는 기분이었다. 좀처럼 익숙해지는 일이 없었다. 하이너씨는 알고 있었다. 언제 커브를 돌아야 하는지, 어디가 가장 도로변 나무들이 풍성하게 자라있는지, 그 나무가 언제쯤 낙엽을 떨어뜨리는지도 하이너씨의 머릿속에 각인이 됐다. 너무 자세히, 그토록 명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지루했다. 그의 삶에 더는 극적인 변화가 없었다.

공기마저 정체된 새벽의 도로는 늘 텅 비어 있었다. 사파리 투어 전용 코스였기 때문에 개장 전에는 당연한 일이었다. 하이너씨는 매일 번갈아 가며 사파리에 방사되는 맹수들을 예상하는 일로 하루의 운세를 점쳤다. 동물원에 세 마리뿐인 백사자가 나올지, 나온다면 전부일지 아닐지, 호랑이들은 암수가 몇 마리나 풀릴지, 우두머리인 탱크와 이인자인 보트가 함께 나올지를 예상했다.

아득도 저들처럼.

차가 사파리 코스를 완전히 빠져나가 아득이 머무는 우리에 다다를 때면 하이너씨는 결국 한 가지 생각만으로도 벅찼다. 사방이 막힌 미로를 간신히 빠져나왔더니, 더 거대한 장벽이 그의 앞을 가로막는 기분이었다. 그나마 우리 안에서 돌덩이처럼 진득하게 버티고 있는 아득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입구를 찾아내지 못했을 것 같아 어깨가 떨렸다.

아득의 먹이통을 채우는 일로 사육사로서의 하루가 시작된다. 먹이통과 물통을 채워두고, 간밤에 녀석들이 남겼을 배설물들을 치우기 위해 하이너씨는 쉴 틈이 없었다. 거의 움직임이 없는 녀석들임에도 우리 곳곳에 잘 보이지 않는 부분에 녀석들은 실례를 했다.

처음 동물원에 와서 지금까지 하이너 씨는 아득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배설물만은 보물찾기하듯, 부끄러워 차마 보일 수 없다는 듯, 그에게 들키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숨기려는 것처럼 여기저기에 흩어놓았다.

하이너씨는 동물들의 배설물을 치우는 일을 괴로워하지 않았다. 그들을 여기에 가두어둔 이상 당연히 제공해야 할 서비스라고 여겼다. 하이너씨에게 동물들은 까다롭지만, 충성도 높은 고객들과 비슷했다. 고향에 있을 때, 하이너씨는 그가 돌보는 녀석들이 자신을 보호자로 여겨서 너무 괴롭고 부담스러웠다. 고양잇과 동물들의 동공이 한껏 확장되어 그를 우러러보면,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갯과 동물들이 그의 다리를 휘감으며 친근함을 표하면, 그는 팔을 벅벅 긁었다. 어느 녀석이든 애정을 보이면 그는 심장박동이 빠르게 뛰고 정수리가 젖어 들었다. 영장목들이 그의 등장에 흥분해서 끼욱대며 목을 휘감는 순간이면, 마른기침이 나와 참을 수가 없었다.

'난 아니야.'

이들이 인간의 언어를 갖지 못한 것이 다행스럽기도 하고, 불만스럽기도 했다. 영리한 녀석들은 사육사들과 의사를 어느 정도 주고받을 수 있었지만, 언어와 대화의 이면까지 완전히 이해한다고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그랬다면 철창과 방탄유리에 갇혀 자유를 빼앗긴 채로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내보일 수는 없다.

아득을 맡은 이후로 하이너씨는 생각이 바뀌었다.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가 성립하는 일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이너씨는 아득이 그의 보호자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가족과는 조금 달랐다. 하이너씨는 고향에 있는 어머니 이외에는 가족이 없었다. 아득을 돌보게 된 이후로는 얼굴도 거의 뵙지 못했지만, 그분마저 돌아가신다면 그에게는 정말 가족이라 말할 수 있는 이가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 아내도 자식도 없는 그에게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아득 뿐이었다. 땅속 깊숙이 박혀 오랜 세월의 풍파에도 도저히 깎이지 않을 것 같은 아득 만이 그의 보호자가 되어 하이너 씨의 마지막을 지켜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많았다.

하이너씨의 하루는 아득의 일과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대부분이 똑같았다. 주기적인 검진과 닥터 한의 방문 정도를 빼면, 먹이를 주고 우리를 열어주고 배설물 치우기가 전부였다. 아득은 활발한 동물이 아니었다. 산책을 조르는 강아지들과는 한참 달랐다. 하이너씨의 아버지는 개를 무척 좋아했다. 주인에게 보이는 무한한 애정과 가슴이 벅찰 정도의 충성심이 아버지를 감동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놈들의 신이다."

아버지는 개들이 자신을 그들 우주의 절대자로 모시는 태도에서 뿌듯함을 느꼈다. 개들에게 재주를 가르치고 그것이 완벽하게 성공했을 때는 태초의 창조주가 느꼈을 기쁨이 무엇인지 아버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골든래트리버인 스프링(springen)을 유독 아꼈다. 아직 새끼였던 녀석이 통통 구르는 모습을 보고 지어준 이름이었다. 이름처럼 녀석은 성견이 되어서도 아버지를 보면 어깨까지 덥석 뛰어올라 그를 자주 넘어뜨렸다. 언제나 반듯한 몸가짐을 강조하는 아버지였지만, 스프링이 그를 향해 돌진해도 사양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스프링은 아버지가 가르치는 재주를 척척 익혔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 때문인지, 하이너씨는 자연스럽게 사육사가 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특별히 개를 좋아하는 것도, 동물들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이너씨의 아버지는 엽총 사냥을 나갈 때면 스프링을 데려갔다. 녀석은 대단히 용맹하지는 않았지만, 조렵견으로서의 사명을 다할 정도는 됐다. 스프링에게 아버지와의 사냥은 놀이의 연장선이었다. 녀석이 물오리 떼를 쫓아 한적한 겨울 강변을 달리는 모습은 전원에 어울리는 목가적인 풍경이었다. 아버지에게는 무엇보다 이상적인 풍경으로 보였을 것이다. 아버지가 물오리를 총으로 겨누면, 스프링은 언제든지 달려 나갈 수 있게 숨을 죽이고 서 있었다. 타앙. 총성이 채 끝나기도 전에 녀석은 아버지가 끊어낸 목숨을 향해 내달렸다. 둘 사이의 호흡은 탁월했다. 파고들 틈이 없었다.

스프링은 어이없이 죽었다. 아버지를 따라간 사냥에서 누군가 숲에 놓아둔 덫에 걸려 죽었다. 앞다리가 걸린 채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차마 두고 볼 수 없었던 아버지가 손수 목숨을 거두어들였다. 단 한발로 충분했다. 타앙. 총성이 울리고 메아리가 숲을 오래도록 휘돌았지만, 녀석은 달리지 않았다. 하이너씨는 스프링을 위해 울지 않았다. 그저 짧은 생이었지만 찬란했으리라 말하고 싶었다. 녀석이 평안 속에서 마지막 호흡을 쉬었기를 바랐다. 사랑하던 주인에게 당한 배신 앞에, 그것은 녀석에 대한 지독한 기만일 뿐이었다. 아버지는 본인의 말대로 녀석의 신이었다. 죽음의 신이었다.

하이너씨가 사육사가 되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반대했다.

"개 한 마리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할 녀석이 무슨."

하이너씨는 동물에게 재주를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서커스단의 조련사가 되려고 하는 게 아니었다.

"가르치지 않고 키워내고 싶어요."

하이너씨는 지금에 와서야 그것이 얼마나 오만한 말이었는지 깨달았다. 자신은 아버지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같았다. 그들이 인간보다 열등하기 때문에, 보호받아야 하므로, 혼자서는 야생을 버텨낼 수 없기 때문에.

'키워낸다.'

아버지에게 자신은 다르다고 했던 말이었다. 단어만 바뀌었을 뿐, 아버지의 생각을 고스란히 답습했을 뿐이다. 저도 결국 똑같았습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고향을 떠나오기도 전에 이미 세상에 없었다.

 

(상)

-

(하)

 

아득의 시간은 느렸다. 모두가 개별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산다고 하지만, 녀석들은 특히 더디게 살아갔다. 갓 태어난 사슴은 제 어미가 태반을 핥아주기가 무섭게 걸었다. 청둥오리 새끼는 알을 깨고 나오자마자 뒤뚱거리며 본능적으로 어미를 따라다녔다. 야생에서 살아가야 하는 동물들에게 자력으로 걷는 일은 중요했다. 최상위 포식자가 아닌 이상, 그들은 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과는 달리 빠르게 성장해나갔다. 아득은 달랐다. 출산한 어미 중에는 간혹 태반을 핥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듯이 가만히 있는 녀석이 있었다. 사육사들이 달려들어 닦아줘야 했다. 새끼들은 오래도록 눈을 뜨지 않았다. 빛이 없어도 살 수 있는 두더지처럼 눈을 감은 채로 어미의 옆에 누워 움직이지 않았다. 어미 아득이 커다란 바위라면 새끼들은 조약돌 같았다. 갓 태어났을 때를 제외하면 아득은 우는 일도 거의 없었다. 배가 고프면 보채기 마련일 텐데, 어미의 젖내를 쫓는 본능마저 없어 보였다. 주사기에 넣은 동물용 분유를 한 방울씩 흘려 넣어 주면 그제야 배가 고팠다는 듯이 가늘게 신음했다.

수명이 짧은 동물의 시간은 인간보다 느리다고 한다. 개들은 20년을 채 살지 못했다. 그들이 외출한 주인을 기다리는 시간이 마치 영원과도 같을 거라는 말을 떠올리면, 하이너씨는 마치 우주에 버려진 미아 같았다. 하이너씨는 자신이 남들보다 더딘 시간 속에 있다고 여겼다. 그는 대체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 자신만 혼자 느려진 시간 속에 머물게 된 이유를 몰랐다.

아득은 한참 동안 자라났다. 느렸다. 너무 느려, 어느 시점까지 성장을 마치고 언제 노화가 시작되는지를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하이너씨 얼굴에 패인 굴곡이 제법 짙어졌다. 주름 때문에 눈물이 흐르는 물길이 바뀌어 갈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아득이 어디쯤 자신의 생을 살아냈는지 알기에는 부족한 날들이었다.

아들이 이름만 간신히 들어 본 동양의 작은 나라로 떠난다는 소식에 하이너씨의 어머니는 많이 놀랐다. 누군가 옆에 있으면 좋을 텐데. 어머니는 걱정을 쉬는 법을 몰랐다. 괜찮아요. 그는 어머니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달리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괜찮아요, 어머니. 누군가 좋은 사람이 생기겠죠. 한 마디만 덧붙였어도 좋았을 텐데.

하이너씨는 미혼이다. 중년을 넘어선 그가 누군가와 남은 생을 함께 보내게 될 가능성은 점점 더 줄어들었다. 가끔 동료들이 말했다. 이봐,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지금이라도 가. 그에게 좋은 사람이란 어떤 존재일까. 하이너씨에게 좋은 사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는 언젠가 단 한 번, 결혼 비슷한 것을 생각했었다. 아득과 동물원, 동물원과 집, 다시 아득 뿐이었던 그에게도 연애의 기회가 있었다.

하이너씨는 아직 30대 초반이었다. 그는 막내 연구원이던 명은과 거의 10살 차이가 났다. 명은은 닥터 강이 출강하는 학교의 대학원생이었다. 총명하고 적극적이던 그녀는 닥터 강의 눈에 들어 센터에 들어왔다. 가까이에서 아득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굉장한 행운이었다. 막내 연구원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아득의 먹이를 하이너씨에게 전달하고, 특이사항이나 주의할 점 전달하기이다. 서로의 휴무를 제외하면 두 사람은 거의 매일 만날 수밖에 없었다. 오늘 먹이는 정량 배식입니다. 그녀는 짧은 한마디를 전할 때에도 생글거리는 웃음을 꼭 덤처럼 붙였다. 하이너씨는 꽤 오랜 시간 동물원에서 일했지만, 아득과 함께하느라 이국의 말이 좀처럼 빠르게 늘지 않았다. 짧은 대화도 쌓이기 마련이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더해갔다. 그의 서투른 발음과 빈곤한 어휘가 명은을 통해 확장됐다. 그는 자신이 명은을 좋아하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확신할 수 없었다. 너무 오랫동안 아득이 아닌 누군가와 사적인 감정을 나누지 않았다. 예전의 그러했던 감정이 지금의 이것과 같았나. 하이너씨는 오랜만에 고민했다. 명은의 태도는 이성적인 호감일까.

"이번 휴무에 어딘가 가지 않을래요?"

물어오는 명은에게 하이너씨는 고개만 끄덕였다.

둘은 그 주 목요일에 함께 외출하기로 했다. 어디로 가면 좋을까요. 명은이 생긋 웃었다. 하이너씨는 동물원에 오고 처음 1, 2년까지는 휴일이면 시내로 나갔다. 그는 곧 싫증을 느꼈다. 점점 휴일에도 동물원 바로 옆에 위치한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가만히 소파에 앉아 이국의 말이 흘러나오는 텔레비전 화면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 하이너 씨는 몰랐다. 어디로 가면 좋을까. 결국 두 사람은 동물원에서 운영하는 수목원으로 향했다.

매표소를 지나 구름다리를 건너는 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대화가 없었다. 하이너씨는 생각이 말이 되어 나오는 과정 자체가 너무 오랜만이었다. 아득의 단순한 삶이, 적요한 본성이 그에게 옮겨왔다. 차라리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주었으면. 하이너씨는 생각했지만, 명은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산책로를 따라 걷는 내내, 그녀는 작은 감탄사만 내뱉었다.

온통 새빨간 잎이 가득한 낙엽송 정원을 지날 때였다. 하이너씨는 아득이 태어나서 한 번도 낙엽송을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와 정원을 오가는 생활 속에서는 선명한 색채를 접할 길이 없었다. 하이너씨의 작업복도 고무장화도 무채색이었다. 연구원들은 전부 하얀 가운을 입거나, 소독처리가 된 위생복을 입고 아득을 만났다. 그는 아득에게 세계를 구성하는 색의 다양함을 경험하게 해주면 어떨까 고민했다. 아득이 암석처럼 단단하게 굳어있는 이유가 야생의 색을 빼앗겼기 때문은 아닐까. 그들에게 돌려준다면. 안락함과 보호라는 허울 아래 유폐되어 버린 아득에게 돌려준다면. 하이너씨의 머리는 아득으로 들어찼다. 거기에 명은이 던지는 질문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들리세요? 저한테 궁금한 건 없나요? 아득이 아니라."

명은의 물음에 하이너씨가 놀라 대답했다.

"미안해요, 말이 너무 빠르네요."

하이너 씨와 명은은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사귀지 않는 사이도 아니었다. 모호한 상태로 남았다. 그녀는 여전히 웃어주었다. 아득의 상태를 알려주었다. 하이너 씨가 아득의 식사량과 배변량을 알려주면 명은이 받아 적었다. 두 사람이 다시 휴무를 맞추는 일은 전혀 없었다.

망설이는 사이 명은은 센터를 떠났다. 박사과정을 마치기 위해 학교로 돌아갔다.

"당신이 있을 자리는 여기인가 봐요. 저는 갈게요."

잡아 달라는 말이었을까.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이너씨는 정답을 알 기회를 한참 전에 놓쳤다. 하이너씨는 남았다. 아득의 옆이 그의 집이었다. 닥터 강이 정년을 넘겨 은퇴하고 연구원들이 바뀌는 동안에도 하이너씨만은 제자리에 머물렀다.

투표를 통해 새로 탄생한 지사는 공약으로 아득의 일반 공개를 내세웠다. 그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사람들의 기대가 부풀었다. 그는 사업가일 때 쌓아놓은 재력과 인맥으로 정계에 진출해 줄곧 승승장구 해왔다. 본인이라면 중앙 정부를 설득해 낼 자신이 있다고 외쳤다. 하이너씨의 고국에서도 이상한 공약을 내세우는 정치인들은 많았다. 하이너씨가 보기에 지사 역시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유형의 사람이었다.

세계 최대의 관광객 유치를 이루겠다는 미명아래 아득의 일반 공개를 위한 예비 시찰을 허가해 달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연구센터의 사람들은 대부분 격렬하게 반대했다. 아득이 일반에 공개된다면 스트레스로 인해 종의 번영이 위태로워질 거라고 난색을 표했다. 동물보호 단체들도 반대성명을 잇달아 발표했고, 해외 단체들마저 일반 공개를 비난했다. 아득은 레드 리스트에서도 야생 절멸 등급에 해당하는 희귀종이었으므로 당연한 일이었다. 하이너씨는 요즘 들어 아득의 식사량이 자꾸 줄어드는 일이 바깥의 소란과 연관이 있다고 믿었다. 아득은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옆 도시의 아득 한 마리가 폐사했다. 정확한 원인은 조사 중이었다.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해, 아득을 보유한 연구센터마다 비상이었다. 즉시 조사단이 꾸려졌다. 닥터 한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요즘 들어 아득이 출산을 하는 일도 드물었다. 인공수정도 성공률이 자꾸만 떨어졌다. 하이너씨는 아주 오래전 닥터 강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저들은 지나치게 예민해요.'

언젠가 동물원 직원들 사이에서 아득이 무엇과 같냐는 질문이 유행했었다. 아득을 만난 사람들은 아득이 곰이나 코끼리처럼 거대하다고 했다. 아득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아득이 설화 속의 기린이나 용이라고 예상했다. 아득의 울음소리를 들었던 닥터 한이 말했다. 아이들. 그 애들은 영원히 자라지 않는 어린아이와 같아.

아득의 가장 가까이에서 생활하는 하이너 씨에게도 질문이 돌아왔다. 하이너씨는 물어오는 이들에게 그들이 초식동물이 아닌 게 이상해, 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늘 안개를 떠올렸다. 울음소리가 그러했다. 그의 내부를 파헤쳐보는 것 같은 회갈색 눈동자가 그러했다. 하이너 씨가 처음 아득을 맡게 되었을 때부터 줄곧 품고 있던 생각이었다. 후에 그는 이 나라에서 아득의 이름이 희미하고 먼 것을 나타내는 말과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이너씨는 아득의 이름을 붙인 오래전의 누군가에게 '당신도 들었습니까?', 하고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하이너씨는 우연히 알게 됐다. 아득도 간단한 재주를 익힐 수 있었다.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음을 알리는 눈이 내리는 오후였다. 아득은 추워진 날씨 탓에 야외 산책도 거르고 우리 안에 바싹 웅크리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줄곧 한 자리를 지키며 호흡마저 멈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만큼 고요했다. 하이너씨는 온종일 갇혀있는 녀석들이 혹시 배설물 냄새에 곤혹스럽지는 않을까, 자주 우리 안을 돌아보았다.

한 녀석이 발치에 무언가 깔고 있었다. 하이너씨는 조용히 다가가서 아득을 다른 쪽으로 보내려 했다. 엉덩이가 무거운 녀석답게 좀처럼 움직여주질 않았다. 하이너씨는 답답한 마음에 통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잠깐 일어나, 라고 말했다. 아득이 일어났다. 하이너씨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녀석이 깔고 있던 것은 어제 산책에서 묻은 진흙 덩어리였다. 그만 앉아도 되겠다. 그러자 녀석이 원래대로 웅크렸다. 하이너씨는 아득이 앉아와 일어서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그는 세계 최초로 아득 조련에 성공한 사람일지도 몰랐다.

폐사한 아득에 대한 조사는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닥터 한은 죽은 녀석이 단지 운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아득의 일반 공개를 찬성하는 쪽이었다. 연구센터의 지원비를 대폭 늘리겠다는 계산속이었다. 아득은 보호종이었지만, 과도한 예산투입이라는 비난을 받는 일도 종종 있었다. 게다가 쉽게 늘어나지 않는 개체 수와 그들의 더딘 성장과 느린 행동 이외에 특기할만한 생태연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말들이 많았다. 예산을 줄이고 센터를 합병, 폐쇄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이너씨는 꿈을 꾸지 않았다. 기억하지 못했다. 꿈들은 눈을 뜸과 동시에 물에 녹듯 무의식 저편으로 사라졌다. 아득이 앉아와 일어서를 알아듣고 난 뒤, 그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하이너씨는 숲 한가운데 있었다. 그의 머리 위에는 빈틈없이 얽혀서 자란 나무들이 빛을 전부 가리고 있었다. 그의 발밑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물에 젖은 풀냄새가 마치 고향에서 맡았던 그것과 비슷했다. 하이너씨는 반가움에 달리고 싶었지만, 발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두 발이 땅에 박혀버린 느낌이었다. 양쪽 팔이 너무 무거워서 땅을 짚은 채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답답함에 소리를 질렀지만, 재갈을 문 것처럼 신음만 간신히 새어 나왔다. 도움을 청할 방법이 없어 난처해하는 그의 맞은편에 아득 한 마리가 우뚝 서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처음으로 아득과 눈높이가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이너씨의 불안이 사라졌다. 그랬군, 나도 녀석들과 같은 모습이 되었나 보네.

꿈을 꾸기 시작하고 꽤 시간이 지났다. 여느 때처럼 먹이통을 채우고 퇴근 전 배설물을 청소하는 하이너씨의 귓가에 소리가 들렸다. 아득이 울었다. 하이너씨는 녀석에게 다가갔다. 줘. 그렇게 들렸다. 줘. 하이너씨가 말했다. 일어서.

하이너씨는 경비에 빈틈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혼자의 힘으로 따돌릴 수 있을까. 아득은 나가고 싶어 한다. 하이너씨는 아득을 탈출시키려고 했다. 퇴근 시간이 훨씬 지나고 연구센터에 당직 인원만 남았다. 하이너씨는 미리 준비한 먹이통을 우리 앞에 바짝 붙여놓았다. 조명을 낮춰놓은 우리 안에서 아득은 낮과 변함없는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었다. 하이너씨는 나직하게 말했다. 일어서.

아득을 등에 업은 하이너씨의 다리가 덜덜 떨렸다. 노년에 접어들기 시작한 그에게 아득의 무게는 견디기 힘들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숲은 어디까지 계속될까. 하이너씨는 도망쳤다. 아득의 거대한 몸이 그를 자꾸만 바닥으로 처박았다. 축축한 풀숲에 운동화가 자꾸 미끄러졌다. 하이너씨는 믿었다. 아득은 결코 사람을 해치지 않을 거라고. 녀석을 인적이 드문 야산에 풀어주기만 하면 돼. 그의 얼굴이 일그러져 패인 골짜기를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동시에 아득이 두 팔에 힘을 풀었다. 녀석이 등에서 미끄러져 내려갔다. 순식간에 온기가 사라진 등에서는 바람에 땀이 마르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타앙.

하이너씨의 무릎이 스프링처럼 튀었다. 하이너씨는 죽음이 두려웠다. 이토록 선명한 생의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이너씨는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자연스러운 일은 거스를 필요가 없다.

하이너씨가 눈을 뜬 곳은 가문비나무가 즐비한 어느 날의 숲이었다. 빛이 새어 들어오지도 못할 정도로 수두룩한 수목들 사이에 그가 있었다. 산새조차 울지 않는 숲, 작은 짐승의 부스럭거림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고국의 숲을, 아버지와 걸었던 가문비나무 숲길을 떠올린다. 하이너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숲의 출구를 찾는다. 간신히 빛이 새어 들어오는 곳을 좇아 하염없이 걷는다. 어디까지 왔을까. 그는 문득 궁금해져 고개를 들었다. 하이너씨가 올려다본 하늘, 니더작센주의 하늘이 푸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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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껴안아도 따뜻해지지 않는 방

매일 손잡이를 돌려도 나를 찾을 수 없어요



불안은 얼마나 뚱뚱해지는지

모자를 벗어도 표정은 똑같습니다



우리는 날개 없이도 새가 되고

오늘보다 더 빨리 오늘이 쓰러집니다



울음은 턱받이에서 말라가고

눈동자는 쉽게 예민해집니다



손톱이 자라는 속도를 믿지마세요

여전히 풍선은 위험하니까요



이제 옹알이는 퇴화하고



우리는 기계보다 먼저 완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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